au "담배 한 대만 빌려줄래요." 우산 아래로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어왔다. 발목으로 튀는 빗방울의 차가움이 털어버리기에도 귀찮을 정도로 작게 달라붙었다. 슬쩍 들어보인 우산의 앞에는 비에 홀딱 젖은 물 빠진 검은 머리카락이 비쳤다. 익숙하지 않은 적색의 눈동자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띄우며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룩덜룩한 검은색의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에서 언뜻 은빛이 보였다. 본연의 머리 색깔이 은색인걸까. 히지카타는 눈동자를 마주친 짧은 시간, 생각했다. 검은색 장우산의 크기는 컸다. 성인 남자 둘이 같이 쓰고 있기에는 작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한 쪽 어깨를 적시는 것만 감수한다면 그럭저럭 함께 쓰고 있을만은 했다. 넉살 좋게 우산 아래로 침범해 온 그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드는 히지카타를 물끄러..
오키긴 어깨를 힘주어 끌어안은 얼굴이 조금 더 파고 들었다. 피식, 웃는 소리를 흘린 그는 부쩍 추워진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제 등 뒤에 업힌 미소년을 다시 한번 추스렸다. 추스리는 동작마다 그가 좋아하는 달달한 것들의 향이 쏟아졌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향. 미츠바를 떠올리게 하는 그 상냥한 어울림. ... 못 보냅니다.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는 아직 변성기가 덜 지나서. 긴토키는 모른 척하려고 했다. 그런 그를 알아챈 소고가 얼굴을 부비던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었다.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던 어깨가 다시 평안하게 돌아가 진선조를 향한 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 소고는 더운 숨을 내뱉으며 조금 더 깊게 입을 맞추었다. 내 옆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그 자식한테만은 가지마요.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그 말은 고요..
백업 열일곱. 나를 보지 않는 너라도, 그냥 나는 좋았다. [히지긴] 시선의 흔적 W. BP 너를 만난 것은 입학식, 처음 입는 빳빳하고 헐렁한 교복과 함께 들떠있던 날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그 날의 교정에서 나는 저 앞에서 시작된 훈화에 지루한 얼굴로 멍청하게 서있다, 나보다 뒤에 있던 너를 발견했다. 앳된 얼굴로 부루퉁하게 앞만을 지켜보던 너를. 다른 이였다면 칙칙하다고 했을 먹먹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내 눈에는 어떻게 그리도 멋있게 보였는지. 곧게 뻗은 머리카락들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있던 내 머리카락과는 대조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제법 날카로운 눈매가 어쩌다 나와 마주쳤을 때, 나는 우습게도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짧게, 아주 잠시동안 나를 쳐다보는 시선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뒷통수가 뚫릴 것 ..
14. 히지카타.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살랑거렸다. 자장가처럼 울리는 말소리에 눈이 감겼다. 낮게 울리는 작은 웃음과, 손등 위에 얹힌 미적지근한 따뜻함. 넓게 펼쳐지는 푸른 빛의 옷자락 끝이 얼굴을 간지럽게 걸치는 그 느낌. "그만 일어나시죠." 아. 잠들었었나 보다. 히지카타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일어났다. 게슴츠레 뜬 눈 앞에 오키타가 뚱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이 있었다. 무슨 꿈을 꾸길래 미동도 않고 잡니까. 그 꿈 나한테 팔아. 윗입술을 비뚜름하게 올린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이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채 히지카타는 엎어져 있던 책상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 그 짧은 시간동안 주위가 시끄러웠음에도 깊게 잠들어있었던 히지카타는 다음 수업이 체육시간임을 상기해냈다. "아까 좋은 꿈 꿨..
8. 나도 팥빵 좋아하는데. 씨익 웃으며 하나를 채가고는 하는 말이었다. 그것보다 어떻게 알았습니까아!! 감시자의 역할로서 길거리에 숨어있던 야마자키는 제 옆에 쭈그려 앉아 팥빵을 베어무는 긴토키를 보며 기겁했다. 여기까지 와서 남의 식량을 탐내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야마자키가 툴툴대면서도 팥빵이 가득한 봉지를 품 안에서 넘기자 긴토키가 입이랑 행동이 다르다며 키득키득 웃었다. 형씨가 이러는 거 알면 저 부장한테 혼나요. 야마자키가 우울한 듯이 말하자 옆에 앉아있던 긴토키가 친근하게 야마자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다독였다. 왜? 나 때문에 일 안한다고? 여튼 그 자식이 못살게 굴면 우리집으로 도망쳐. 내가 숨겨줄게. 이래봬도 은혜는 갚는다고? 낮게 속삭이는 말에 다른 곳에 반응이 일어난 야마자키는 ..
아 씨바ㅋㅋㅋㅋㅋㅋ 타오른다!!!!! 범한다 긴토키!!!! 하, 하윽, 큭,…. 벌려진 다리 사이를 느릿하게 들어박는 흉기에 온 몸이 떨렸다. 눈 앞에서 터지는 하얀색, 별처럼 빛나는 그 아득한 너머는 짙은 쾌감만이 가득했다. 배경처럼 깔린 헉헉 대는 신음소리, 손 끝으로 희롱당하는 유두는 이제 욱씬거리며 아팠다. 줄줄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는 그만하라는 애원이 뒤섞여 있었음에도 위에서 흉흉한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이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발갛게 짓무른 눈을 겨우 돌려 베개로 파고들려하자 억세게 턱을 잡아챈 손이 허락없이 입술을 맞대고 혀를 집어넣었다. 하얀 머리카락이 침대를 지배하는 진동에 속절없이 흔들거리자 힘줄이 튀어나온 손은 거칠게 어깨에 걸려있던 파란 셔츠를 빼내었다. 이, 미친..
오키긴 히지긴 약간? 소고짝사랑에 카구라가 상담해주는거 너무 취향저격...... 빌어먹을. 오키타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다시. 담배를 문 채 물끄럼하게 제 앞의 상대방을 보고있는 제 상사. 그리고 제게 뒷모습을 보인 채 짝다리를 짚고 있는 그. 오키타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짜증스럽게 돌아섰다. 떨리는 손마디로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잡고 오키타는 자신이 걸어가려는 반대방향으로 다시 돌아섰다. 입술을 즈려물었다. 언젠간 진짜 죽여버리고 말겠어. 짜증스럽게 중얼거린 오키타는 눈에 보이는 공원으로 들어섰다. 터벅터벅 걷고 있는 그 앞에, 익숙한 이가 벤치에 앉아 늘 챙겨다니는 먹을거리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또 땡땡이치는거냐, 해? 이 세금 도둑." 무시하고 지나치려는 걸음을 막은 것은 벤치에 앉아 ..
2. 이건 아니지. 이건 진짜 아니지. 허리가 욱씬거렸다. 평소라면 잘만 떠들어댔을 어느 몸 부위에 대해 사카타는 입도 벙긋 못하며 그곳에 대한 아픔을 속으로 삼켰다. 천진한 얼굴로 쳐자는 제 옆의 인간을 보자니 어이가 없어서 당장에라도 염라대왕과 한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제 허리를 두른 팔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이젠 무어라 따질 힘조차 없었다. 이 개자식아, 순결한 긴씨를 따먹고도 잠이 오세요? 3. 아, 뭐야. 동정 군이잖아. ..정말 네 놈의 상스러운 말투는 따라갈 수가 없군. 대체 누가 동정이냐. 아. 너 말하는 거냐? 이골이 난 얼굴로 품안에서 담배를 쥐어든 히지카타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굴었으면서도 이내 빡빡하게 대꾸했다. 경단을 먹고 있던 긴토키가 슬핏 ..
1. 아오. 넌더리가 난다는 듯 시선이 얽혔다. 그 표정은 이쪽에서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짜증스럽게 응수하려던 외침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걸음을 딛는 순간 평형 감각이라도 잃은 듯 휘청거리는 몸을 보곤 저도 모르게 다가서려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갈 수록 하늘색처럼 빛나는 은발이 나풀거렸다. 그렇게 쳐맞고도 멀쩡해보이는 얼굴에 다시금 짜증이 솟았었지만 역시나 얼굴에만 상처가 덜한 것이었다. 이제보니 귀 부근에선 핏방울이 톡톡 거리며 검은 옷에 스며들고 있었다. 와, 넘어질 뻔 했다. 짧은 감탄사와 함께 겨우 중심을 잡은 그가 여전히 허리를 굽힌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지켜보는 히지카타의 분노가 단전부터 끓어올랐다. 얼 빠진 얼굴로 노려보는 시선에 긴토키가 고개를 들으며 웃었다. 야, 표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