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 "담배 한 대만 빌려줄래요." 우산 아래로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어왔다. 발목으로 튀는 빗방울의 차가움이 털어버리기에도 귀찮을 정도로 작게 달라붙었다. 슬쩍 들어보인 우산의 앞에는 비에 홀딱 젖은 물 빠진 검은 머리카락이 비쳤다. 익숙하지 않은 적색의 눈동자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띄우며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룩덜룩한 검은색의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에서 언뜻 은빛이 보였다. 본연의 머리 색깔이 은색인걸까. 히지카타는 눈동자를 마주친 짧은 시간, 생각했다. 검은색 장우산의 크기는 컸다. 성인 남자 둘이 같이 쓰고 있기에는 작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한 쪽 어깨를 적시는 것만 감수한다면 그럭저럭 함께 쓰고 있을만은 했다. 넉살 좋게 우산 아래로 침범해 온 그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드는 히지카타를 물끄러..
백업 열일곱. 나를 보지 않는 너라도, 그냥 나는 좋았다. [히지긴] 시선의 흔적 W. BP 너를 만난 것은 입학식, 처음 입는 빳빳하고 헐렁한 교복과 함께 들떠있던 날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그 날의 교정에서 나는 저 앞에서 시작된 훈화에 지루한 얼굴로 멍청하게 서있다, 나보다 뒤에 있던 너를 발견했다. 앳된 얼굴로 부루퉁하게 앞만을 지켜보던 너를. 다른 이였다면 칙칙하다고 했을 먹먹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내 눈에는 어떻게 그리도 멋있게 보였는지. 곧게 뻗은 머리카락들이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있던 내 머리카락과는 대조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제법 날카로운 눈매가 어쩌다 나와 마주쳤을 때, 나는 우습게도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짧게, 아주 잠시동안 나를 쳐다보는 시선임이 분명하지만 나는 뒷통수가 뚫릴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