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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긴 下

Azyz 2017. 5. 21. 19:22
느낌이 이상해.

긴토키는 눈을 감은 상태로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추워.

창문이라도 열려있나 싶었던 긴토키가 미간을 찌푸린채 실눈을 떴다. 검은 무언가가 시야 언저리로 나풀거렸다. 그리고 제 목덜미를 뜨거운 무언가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벌려진 허벅지사이에 자리잡은 무게와 열기도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제 옷이 허물어져 서늘하고도 습한 공기에 가슴팍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긴토키는 턱끝을 간질이는 그것을 치우려 손을 들었다. 덥썩 잡힌 그것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손에 잡힌 머리통이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긴토키는 멍멍한 울림이 가득한 머릿속에서도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꿈 속에서도 저를 안고있던 이였다.

“긴토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해도 눈매가 이렇게까지 사나웠던 것 같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이 좀 더 날카로웠다. 아이라는 느낌을 주던 젖살이 약간 빠져있는 것 같았다. 무심히 살짝 미간을 찌푸렸던 긴토키는 흐음, 하고 낮은 울림을 냈다. 그리고 제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손을 발견했다.

“…경찰이 자고 있는 아저씨를 성추행하면 쓰나.”

본래의 유한 눈으로 돌아온 긴토키는 뒤로 약간 물러나 상체를 들었다. 그러다 가만히 저만 쳐다보고 있는 히지카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했다. 키가 큰 듯 했다. 덧붙여 분위기도 조금 달라졌다. 앳된 분위기가 처음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긴토키는 장난처럼 네가 대나무 공주냐며 말하고 싶었지만 진지하게 저를 쳐다보는 눈에 똑바로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골격도 아침보다 더 단단해 보였으며, 얼굴도 제법 성인 티를 냈다. 성장이라도 한 모습이었다. 긴토키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녀석이 크고 있는 것이다.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 한다. 그제야 왜 히지카타가 둔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지 감이 왔다. 약효가 떨어질 수록 녀석은 다시 커가는 것이다. 그것을 녀석이 알고 있었다. 긴토키는 어렴풋 아침에 녀석이 어째서 이상하리만큼 태평했던 것인지 알아차렸다. 지금은 약이 없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몸이 저절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약은 처음부터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채 저 혼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즐겼을 히지카타를 생각하며 긴토키는 깊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열불을 한숨을 쉬어 날려버렸다. 물론 즐기진 않았겠지. 제가 아는 히지카타는 딱히 그런 곳에서 흥미를 느끼진 못하는 성격이었다. 어쨌든 그것들보다는 히지카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드디어 긴토키의 얼굴에도 여유가 돌아왔다.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히지카타도 그런 긴토키를 알아챈듯 다시 고개를 내려 이미 환하게 제쳐져있는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어허. 어딜 그렇게 봐. 아저씨 몸은 볼 거 하나도 없어요.”

씩 웃으며 긴토키가 옷의 지퍼를 올렸다. 아쉬운 표정의 히지카타가 제 행동을 저지할까봐 긴토키는 늘 빼놓고 다니던 한쪽 유카타의 소매에까지 팔을 끼워넣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껴입으면 덥지만,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아무래도 비가 온 뒤로 기온이 많이 내려간 것 같았다.

“약이 필요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 주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별로 효과는 길지 않은 약이니까.”

“지금은 한 열다섯, 열여섯쯤 되려나? 급성장하는 중인데 어디 아프진 않고?”

“딱히.”

“다행이네. 밖은 아직도 비내려?”

“응.”

끄응. 한숨을 내쉰 긴토키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히지카타를 두고 일어섰다. 카구라는 신파치네에 있겠다고 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화라도 걸어 거기서 하룻밤 자게 할까, 무심하게 생각한 긴토키는 어제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긴, 뭘 먹고싶은 상태는 아니었지. 히지카타의 얼굴을 보면 볼 수록 식욕은 달아나고 차라리 식은 땀이 솟았다. 그러나 이제는 히지카타가 해독약이 없어도 자연스레 다시 자라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니 어젯밤부터 제 발목을 붙잡았던 걱정을 덜어놓은 동시에 배도 고파졌다.

“오오구시군도 밥 줄까?”

“누가 오오구시냐.”

“긴 씨는 어젯밤부터 누구때문에 밥도 먹질 못하고 굶었어요~. 아, 달걀 다 떨어졌다.”

한결 따뜻해진 손으로 뒷목을 벅벅 긁던 긴토키가 냉장고를 열며 탄식했다. 먹을만한 반찬같은건 이미 카구라에 의해 동난지 한참이었다. 그러고보니 아침에도 히지카타에게 내어 준 밥이라고는 끽해야 스크램블드에그와 어제 먹고 얼마 남지 않았던 야채소세지볶음이었다. 나가기 싫어도 또 다시,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어제 나간 이유에 카구라 약 말고도 떨어진 식료품을 채우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지. 누구때문에 식료품 가게는 들리지도 못하고 약만 사서 바로 들어왔지만 말이다. 긴토키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카구라가 아침부터 신파치네로 나간 이유가 있었다.  비가 너무 와서 나가기 귀찮은데. 스윽, 냉장고에서 눈을 돌린 긴토키는 소파에 걸터앉아 저를 쳐다보는 히지카타를 몰래 흘깃했다. 저 녀석이 여기에 얌전히 있으면 빠르게 갔다올텐데. 긴토키가 냉장고 문을 닫고 똑바로 일어서선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참에 히지카타가 먼저 선수를 쳤다.

“사러 나가지.”








우산안으로도 비가 들이쳤다. 흙탕물이 시내를 이루게 되어버린 길바닥은 걸을 때마다 조그마한 물방울이 튀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많이 가늘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전방이 흐릿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내렸다. 인디펜던스데이라고 명명한 지가 언제였던가. 이제는 파란 하늘이 그리웠다. 지난 몇 년 이래 최대 폭우라던 말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었다. 습기때문에 평소보다 배는 더 칙칙해진 머리카락에 우산 안으로 들이닥친 비가 스며들어 젖어있었다. 제 옆에 나란히 걷고있는 그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터였다. 곧게 뻗은 흑발은 바람에 나부껴 언제라도 눈에 머리카락이 들어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는 세차게 내렸다. 나란히 걷는 걸음 뒤에는 작은 소음도 전부 빗소리에 묻혀 온 세상이 비가 퍼붓는 소리로 가득했다. 나른한 표정 위로 귀찮음이 떠올라 있었다. 식료품을 파는 가게까지 걷는 이 거리가 오늘만큼 길게 느껴졌던 적도 없다. 긴토키는 지금 그 무엇보다, 아무 말없이 저와 동행하는 이에게 가장 신경이 쏠려있었다.

당연히 긴토키는 안된다고 했다. 한 명만 나가면 되지 귀찮게 뭣하러 둘 씩이나 나가냐는 말이었다. 그 안에는 얌전히 집안에나 있으라는 긴토키의 회유가 담겨있었지만 히지카타는 영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없으면 못 살겠어, 오오구시군? 결국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툭 내뱉는 긴토키의 말에도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포기한 긴토키가 얌전히 입고 있던 유카타를 벗고 바짓단을 걷어올리기 시작하자 히지카타는 그제서야 제 몫의 우산을 챙기고 차분히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아, 정말. 애를 돌보는건 힘들구만. 긴토키가 뻔한 감상을 생각하며 지갑을 챙겼다. 장마철이라 일은 없었지만 다행히도 장마철 전 크게 의뢰비가 들어왔었기에 식재료를 많이 사온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성싶었다. 저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긴토키는 먼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머, 긴 씨잖아. 근데 이 애는 누구래요?”

자주 가는 식료품점의 아가씨가 긴토키를 발견한듯 웃으며 말을 걸었다가, 이내 긴토키의 옆을 차지하고 서있는 히지카타를 보며 의아함을 표했다. 대꾸하기 귀찮다는듯 긴토키가 손을 휘휘 내저었으나, 집요해진 여자의 시선을 보며 금방 유순한 얼굴로 대꾸했다.

“숨겨놨던 아들입니다, 아들~.”

“흐음. 그렇다고 치기엔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데요? 대체 몇 살에 생긴 애길래 이렇게 커요? 닮은 구석도 없고. … 응? 그러고보니 누구랑 닮았는데요? 그, 진선조의 유명한 분이랑 닮았는데…. 히지카타 씨던가?”

“예~, 그 놈 아들입니다~.”

“방금은 긴 씨 아들이라고 했으면서.”

“아이, 사람 생긴게 다 비슷하지. 달걀 한판만 줘, 언니. 근데 이 장마철에 끈질기게도 장사하고 있네?”

“장마라고 사람이 먹고 살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저희집은 탁주가 유명하니 비오는 날에 먹지 않고 못 배겨요.”

씩 웃으며 뒤로 사라졌다가 달걀을 들고 나온 여자가 싹싹하게 넘겨주자 긴토키가 웃으며 처마 밑에 내여진 평상에 주저 앉았다. 빗물이 튀겨 그 끄트머리가 조금 젖어있었지만 긴토키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여자는 식료품점에 식재료를 사러 와서는 가만히 앉아 있다, 집에 돌아갈 때 즈음에 다시 몇가지를 더 사들고 들어가는 긴토키를 매번 봐왔기에 이번에도 달걀판을 옆에 내려놓은채 멍하게 앉아있는 긴토키의 모습을 보고도 그러려니 했다. 멀뚱히 서있는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바라보다 옅은 한숨과 함께 우산을 접으며 긴토키의 옆에 앉았다. 젖은 유카타의 밑단이 본래의 색보다 더 짙게 물들었다.

“그럼, 나도 한 병만.”

“어이,….”

여자가 알았다며 웃으려는 때에 가만히 앉아있던 히지카타가 미간을 찌푸리며 껴들었다. 긴토키가 웃는 낯짝으로 히지카타의 머리통을 끌어안은 것도 순간이었다. 응? 놀란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기울인 여자가 긴토키를 보며 의문을 표하자 긴토키가 퍽퍽, 소리나게 히지카타의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어이쿠. 요 녀석이 아빠를 너무 좋아하잖아? 웬일로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서 날 부를까?”

누가봐도 싫은 표정의 히지카타가 제 머리를 끌어앉고 등을 두들기며 온갖 난리부르스를 치는 긴토키의 옆모습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런 긴토키를 보며 눈 감아주겠다는 듯 웃으며 긴토키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었다.

“어머, 잘생긴 청년이 아버지 품을 굉장히 좋아하나 보네. 근데 아드님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진짜 술 드려요?”

“아들은 누가….”

…아들이냐!
신경질적으로 외치려던 히지카타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어느새 등을 끌어안던 두 팔을 풀고 히지카타의 두 볼을 양쪽으로 잡아 늘린 긴토키가 맑게 웃으며 히지카타를 쏘아보았다. 입 다물어라, 앙? 웃는 낯에 짜증을 가득 담아 속으로 사자후를 날리는 긴토키의 얼굴에 마지못해 히지카타가 입을 다물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조용해진 히지카타와 눈싸움을 하던 긴토키가 승리를 거머쥐자, 만족스럽다는듯 고개를 돌리곤, 웃으며 둘을 바라보던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당연히 줘야지. 자꾸 이렇게 아빠랑 노는 거 좋아하면 훌륭한 남편이 되지 못해요, 아들. 언니, 빨리 갖다줘.”

참지못하고 풉, 웃음을 터트린 여자가 가게 문 대신 달아둔 천을 걷고 사라지자 히지카타가 대번에 저를 껴안고 부둥대던 긴토키의 팔을 잡으며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뭐하자는 거냐.”

“뭘? 네가 들키기 싫어해서 내가 막아준 거 아니야. 네 목소리는 너어무 특이해서 듣기만 해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고?”

긴토키가 낼름 대답하자 기가 찬 듯이 가만히 있던 히지카타가 이내 입을 열었다. 술도 못 마시는게 여기에서 마시면 어쩌자는 거냐? 길거리에서 노숙이라도 하고싶은가 보지? 긴토키의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이를 가는 히지카타의 목소리에 긴토키가 픽 웃으며 대꾸했다. 긴씨는 말술이거든요?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라! 어제 길거리에서 노숙하던 건 너야. 그리고 이 착한 긴 씨가 데리고 와줬거든요? 고마워 하라고. 잡혔던 손아귀에서 능구렁이처럼 빠져나온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코 끝을 손가락으로 톡 치며 말하자 히지카타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팔짱을 끼곤 비가 쏟아지는 천막 밖을 쳐다보았다.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의 풍경이 을씨년스러웠다.

“…빈 속에 술 마시면 속 버려.”

나즈막히 깔리는 목소리가 어쩐지 귀엽기도 했다. 그걸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토키는 진심으로 웃는 소리를 냈고, 히지카타는 툴툴댔다.

“긴 씨는 튼튼해서 괜찮아. 미성년자 아드님은 술냄새 맡지 말고 저어기 가서 앉아있어.”

“누가 네 아들이냐!”

“마마보이는 여자들이 싫어해.”

“이번엔 엄마냐!”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긴토키를 소파에 내팽겨치듯 놓으려던 히지카타는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 다소곳하게 내려뒀다. 소파에 드러누운 긴토키는 역시나 그 탁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취했다. 양심은 있는지 히지카타가 붙잡지 않아도 비틀거리며 해결사 사무소까지 걸어왔지만, 계단이 막아서자 급격하게 생체 능력이 다운되어 비가 들이치는 계단 앞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결국 히지카타는 그를 잠시 세워두고 먼저 손에 쥔 식재료를 집 안에 둔 뒤 긴토키를 부축해 옮겼다. 긴토키는 소파에 드러눕자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눈을 떴다.

“으, 메스꺼워.”

“가서 게워내.”

히지카타는 못마땅한 얼굴로 어깨를 주물렀다. 흐물거리는 긴토키를 들쳐매다시피 올라와, 어깨가 뻐근했다.

곡주를 마실 때 숙취가 더 오래간다는 건 기본 상식이잖아. 속으로 중얼거린 히지카타는 무거운 신음을 내며 좀 더 편하게 눕는 긴토키를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발갛게 오른 얼굴이 흐리멍텅하게 뜬 눈으로 히지카타를 마주보았다. 한참을 멍하게, 불퉁한 표정으로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히지카타를 바라보던 긴토키가 이내 은은하게 입꼬리를 올린 얼굴로 두서없는 말을 내뱉었다.

“너 말이야. 얼굴은 분명 어린데 엄청 사나워보여.”

“시비냐, 술주정이냐.”

“잘생긴 얼굴 그렇게 쓸거면 나 줘. 찰랑거리는 직모도 나 줘.”

“… 술주정이군.”

히지카타는 미약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긴토키가 누워있는 반대편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입었던 제복은 푹 젖어서 지치지도 않고 쏟아지는 장마때문에 여전히 빨랫감으로 남겨진 채였고, 아침에 발견한 담배마저도 젖어있어 피울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몸이 어려져 있으니 담배를 산다고 신분증을 내밀어도 아마 못 살 터였다. 아니, 신분증을 내밀고 싶지도 않다. 담배를 쥐었던 손은 허전함에 괜시리 주먹을 말아쥐기만 했다. 누워있는 제 연인은 밥도 안먹었으면서 술에 취해 속이 안좋다고 중얼거렸다. 자신도 아침에 밥을 먹은 뒤 오후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프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배가 고프기 이전에 제 앞에 누워 있는 이의 위장에 무엇이든 넣어주어야할 것 같은데, 저 상태로는 그보다 마셨던 술을 먼저 게워내는게 우선이다. 히지카타는 결국 다시 긴토키의 앞으로 다가섰다.

“빨리 게워내버려. 어제 밤부터 아무것도 안먹었다면서.”

“하지만 일어나기 싫어….”

꼼지락거리며 누워있던 긴토키가 이제는 손발을 움직이기도 귀찮다는듯 멍하게 히지카타를 올려보았다. 나른하게 떠진 눈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저대로 또 자게 내버려뒀다간 분명히 내일 술병이 날거다. 히지카타는 결국 축 늘어진 긴토키의 상체를 제 힘으로 일으켰다. 아야야, 좀 상냥하게 대해줄 수 없어? 무작정 팔뚝을 붙잡고 일으키는 힘에 긴토키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좁혔다. 얼씨구. 히지카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긴토키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그를 일으켰다. 우욱. 옆에서 들리는 헛구역질 소리에 히지카타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긴토키를 바라보자, 긴토키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어. 장난.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내는 긴토키의 얼굴에 차마 화를 내지 못한 히지카타는 언짢은 표정을 팍팍 드러내며 긴토키를 부축했다.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 앞으로 몸을 숙이게 하자 긴토키는 순순히 변기를 붙잡았다.

“우웩─”

“아오.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진짜.”

히지카타는 툴툴대며 긴토키의 등을 두드렸다. 한동안 게워내는 소리가 화장실 안을 채우고, 욱욱 거리는 소리를 내던 긴토키가 한참만에 변기 물을 내렸다. 아, 피곤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긴토키가 세면대에서 얼굴을 닦아내고 입 안을 헹구었다. 양치질도 해. 뒤에서 가라앉는 히지카타의 목소리에, 네네,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거든요, 긴토키가 굳이 안해도 될 추임새를 끼얹으며 순순히 치약묻힌 칫솔로 양치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멀쩡해보이는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히지카타는 뚱한 표정으로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됐냐, 됐어?”

한결 나아진 표정의 긴토키가 문 옆에 걸려져 있던 수건으로 얼굴에 묻었던 물기를 닦아내자, 히지카타가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났다. 히지카타를 따라 화장실에서 나온 긴토키는 아까보다 멀쩡해진 정신으로 두 눈을 부볐다.

“밥 먹어야지. 뭐 먹을래.”

“뭐야. 오오구시 군이 해주게?”

“오오구시가 아니라 히지카타다. 해주려고 하니까 묻는거잖아.”

“어…마음은 고마운데, 정말 마음만 받을게. 그냥 식탁에 앉아있어. 내가 할테니까.”

술은 제대로 깼냐?
히지카타가 대꾸하는 말에 긴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칼로 네 손가락이라도 썰면 어쩌려고. 히지카타가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에 긴토키가 피식 웃었다. 사람 말 안 듣는다고 또 삐졌냐. 긴토키는 제 딴에 숨기려고 했겠지만 숨겨지기는 커녕 생각이 다 드러나는 불만스러운 그 얼굴을 냉큼 두 손으로 잡았다.
쪽.

“무슨,…!”

“마음만 받는다니까.”

히지카타가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양 볼을 잡고 반듯한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가 뗀 긴토키는 그에게서 금방 등을 돌리고 식탁 쪽으로 걸으며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꺾었다. 뚝, 뚝, 뼈가 맞춰지는 소리에, 히지카타는 조금 상기된 제 볼을 머쓱하게 문지르며 얌전히 긴토키의 뒤를 따라가 식탁 의자를 빼어 앉았다.

“나는 달걀 소세지 볶음에 미소국 먹으려고 하는데. 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그냥 너랑 똑같은 걸로.”

예, 예.
긴토키가 소리없이 웃었다.










“키가 또 컸네.”

긴긴 하루가 끝나갔다. 창 밖에서는 장마가 기세를 잃은 것처럼 굵디 굵었던 빗방울이 아닌 가는 비가 내렸다. 이제는 거의 비슷해진 키를 눈대중으로 어림짐작하며, 긴토키는 그를 위한 이불을 하나 더 깔았다. 긴토키의 옷을 받아들고 씻고 나온 그는 긴토키의 말을 듣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만 말았다. 서로를 말 없이 바라보는 침묵의 시간이,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히지카타는 대치를 풀고 긴토키가 깔아준 이불로 들어갔다. 그건 긴토키의 자리였지만, 긴토키는 슬쩍 눈만 흘긴 뒤 사무소의 거실로 나왔다. 벨소리가 요란하게도 울렸다.



“어어. 카구라냐.”

긴토키가 받아들자 전화기 뒷편에서 소란스러운 카구라의 말이 두서없이 울려퍼진다. 가갸가갸, 되게 시끄럽구만. 긴토키가 멍하게 생각했다.

─ “긴토키, 잘 있냐, 해?”

“그럼 질질 짜고 있으리. 긴 씨는 어른이라 알아서 잘 해요.”

─ “나 이제 몸 괜찮다, 해. 신파치가 전골도 해줬다, 해.”

“아, 그래. 다행이네.”

대머리 아저씨한테 혼날 일은 없겠군. 긴토키는 눈을 나른하게 감았다 뜨며 생각했다.

─ “집에 가도 되냐, 해?”

긴토키는 뭘 그런걸 일일히 물어보냐고 대답하려다가, 집에 아직 긴토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긴토키는 짧은 한숨을 내뱉은 뒤, 입을 열었다.


“─아니. 오늘은 신파치네서 자라. 손님 아직 안 갔어.”

─ “아픈거 아니면 빨리 내보내라, 해. 거긴 탁아소가 아니다, 해.”

“네에, 네에. 그렇게 합죠.”


전화는 이후로 별말없이 끊겼다. 아까전에 낮잠도 잤건만 다시금 졸음이 몰려왔다.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거무죽죽한 하늘이 보였다. 긴토키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조용한 숨소리만 울렸다. 벌써 자나. 긴토키는 제 이불더미 위에 올라앉아 미동도 없는 이를 내려다 보았다. 휴. 긴토키는 바로 옆에 깔린 이불로 기어들어갔다. 이불끼리 딱 붙어있는데도 더위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장마가 지나치게 길었던 모양이다. 긴토키는 조심스럽게 이불밖으로 삐져나온 히지카타의 손을 제 손가락으로 얽었다. 아직도 어려서 그런가, 피부가 부드럽잖아. 긴토키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어려지고 싶다. 꿈에 들어가기 직전 긴토키가 말을 내뱉었다. 이젠 고른 숨소리만 울렸다.

여태껏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던 히지카타가 눈을 떴다. 정자로 천장을 향해 뉘였던 몸을 모로 돌아누웠다. 마찬가지로 제 쪽을 향해 돌려진 긴토키의 얼굴이 보였다. 늘 반쯤 떠진 채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완전히 감기자, 그의 얼굴은 아직도 많이 어려보였다. 아직 서른 살도 되지않은 그의 어깨에는 이미 너무 많은 짐이 놓여있었다. 잘 땐 이렇게 어려보이는데. 제 손을 놓지 않고 잠든 긴토키를 보며 히지카타는 소리없는 웃음을 냈다.

네가 어려지면, 나는 감당할 수 없어.

목소리는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히지카타는 조금 더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긴토키가 내뱉는 숨결이 얼굴 언저리에 닿았다. 하얀 곱슬머리가 이마를 간지럽혔다.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군.









“…아.”

긴토키는 제 눈을 찌르는 햇살에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깼다. 장마가 완전히 끝난 첫 날 이었다. 오랜만이다, 햇님아. 멍하게 눈을 뜨고만 있던 긴토키는, 옆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애초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이부자리가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긴토키는 왠지 신경질이 났다.



“의리 없는 자식, 깨우지 말란 때는 꼭 깨워서 인사하고 가더니.”

“내가 언제.”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한 손으로 더 엉키게 만들며 방문을 드르륵 열고 나온 긴토키가 불만스럽게 쫑알댔다. 한참 쫑알거리는 사이에 갑자기 끼어드는 목소리 덕분에 긴토키는 화들짝 놀라 문턱에 발을 찧였다. 악! 짧은 비명이 끝나고 눈꼬리에 찔끔, 눈물을 매단 긴토키가 원흉을 바라보았다. 조간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폼이 딱 히지카타 토시로였다. 히지카타는 신문 너머로 원맨쇼의 달인 긴토키를 주시하고 있었다.


“뭐야, 아직도 안갔냐?”

“방금까지 한 말들이랑 아주 다른데.”

“시끄러워.”


여전히 발가락이 아픈지 인상을 쓰던 긴토키가 히지카타를 흘깃 노려보았다. 히지카타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꿍얼거리며 부엌을 향해 걸어가는 긴토키의 목부근이 얼핏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럴 때 귀엽단 말이지. 히지카타는 신문을 내려놓고 아직 따뜻한 커피를 다시 들이켰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컵에 따른 후 그것을 들고 소파로 걸어와 앉았다. 히지카타는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몸이 돌아오고나서 처음 피는 담배인지, 재떨이는 깨끗하게 텅 비어 있었고, 그것을 증명하듯 담배곽 안은 틈없이 꽉 차 있었다. 긴토키는 천천히 차가운 물을 들이켰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히지카타가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픽 웃었다. 얘가 미쳤나. 그러고보니 어제부터 미친놈이었지.


“너 말이야. 어제부터 계속 이상하다고.”

키스를 하고 싶다고 하질 않나. 자는데 건드리기나 하고 말이지. 긴토키가 다 마신 물컵을 내려놓자, 히지카타가 또다시 웃어보였다. 그래, 지금 계속 웃는 것도 이상해. 맥없이 중얼거린 긴토키는 나가려는 것처럼 소파에서 일어나는 히지카타를 따라 같이 일어났다. 히지카타는 한 번 더 담배를 빨아들였다가, 연기를 내뱉었다. 열려있는 창문쪽으로 연기가 흘러나가는 모양과, 하얀 연기가 내뿜어지는 히지카타의 입술을 긴토키가 말없이 지켜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저를 바라보는 눈꼬리가 또 다시 가볍게 휘어졌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다정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껐다. 곧 긴토키의 눈도 반달처럼 휘어지고,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이 입술을 가볍게 맞추고 떨어졌다. 그리고는 히지카타가 어느때보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긴토키는 결국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게 내 진심이니까.”













백미포함 8630자.
;;; 올린줄 알고 있었는데 안올렸었다... 작년 12월에 다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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