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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긴 上

Azyz 2016. 10. 16. 00:00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닷새째 그칠줄 모르고 쏟아지는 비에 마을을 가르는 강의 줄기가 위협적으로 솟구쳐 있었다. 궂은 날씨에 일은 커녕 움직이기도 귀찮은 장마지만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사정이 있었다. 그 사정인 즉슨 카구라가 며칠째 비를 맞으며 쏘아다니다 결국 독한 감기에 걸려버렸다는 것. 손이 많이 가는 꼬맹이라고 투덜거리며 긴토키는 제가 늘상 입던 유카타조차 접어두고 바짓단을 무릎까지 걷어올린 채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카구라가 아픈 일은 드물었다. 그마저도 내내 비를 맞고 다니며 최근 며칠간 밥은 보지도 않고 과자만 퍼먹어서 그런 듯 했다. 그 대머리 아저씨한테 혼나겠지. 짜증에 짜증을 거듭 내면서도 긴토키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

빨리 걷던 걸음이 우뚝 섰다. 건너고 있던 다리를 지나자 들어서는 골목에 누군가가 있었다. 웅크려있는 크기로 봐서는 어른이 아닌 아이였다. 어떤 자식이 자기 애를 비오는 길가에 버려둬? 한치 앞도 볼 수 없을만큼 빽빽하고도 새차게 쏟아지는 비가 우산을 뚫을까 염려되기까지하는 날씨였다. 보통 궂은 날씨도 아닌데 우산조차 없이 비를 맞고있는 아이의 모양을 보자니 긴토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일면식도 없는 꼬맹이. 이름도 모르는 꼬맹이. … 비오는 거리에 혼자 쓰러져있는 꼬맹이. 긴토키는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에 벌써 그 앞에 서있었다. 조심스럽게 우산을 기울였다. 쏟아져 내리는 비가 가끔 아래의 주인집 종업원이 가끔 쓰는 안마봉처럼 어깨를 두들기며 적셨다. 뿌옇게 보였던 형체가 온전히 드러났다. 정신을 잃은채로도 한없이 찡그려진 미간이 어딘가 낯익었다. 먹색보다 더 짙은 흑발을 가진 아이는 어른들이 입을법한 옷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어른들이 입을법한 옷. 긴토키는 이 아이가 입고있는 옷이 무엇인지 단박에 깨달았다. 그것은 에도를 지키는 이들의 경찰제복이었다.







“약 사왔…또 뭐 주워왔냐, 해?”

“시끄럽다. 약은 봉지안에 있으니까 먹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긴토키의 등에는 아이가 업혀있었다. 카구라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깨 너머의 아이를 흘깃보곤 젖은 기침을 하며 봉지를 뒤적였다. 약과 함께 빠져나오는 사탕봉지를 보고 카구라가 피식 웃었다. 카구라를 지나치던 긴토키가 중얼거렸다. 나 먹으려고 산거니깐 건들지 마라? 속이 보이는 부러 얄궂은 대꾸에 카구라는 들은 척도 없이 물약을 꺼내 삼킨 후 봉지를 뜯어 사탕을 꺼내먹었다. 여전히 아이를 등에 업은 채 긴토키는 축축한 발로 마루를 횡단했다. 몸에서 떨어져내린 빗방울이 긴토키의 종적을 따라 흩어져있었다. 긴토키는 서늘하게 식어있는 아이의 몸을 등으로 느끼며 보일러를 켰다. 조심스럽게 화장실 욕조에 아이를 눕혀놓고 긴토키는 일단 따뜻한 물을 틀었다. 겉옷은 어렵사리 빼내어 대충 옆에 개켜두었지만, 여전히 나머지 옷은 입혀둔 채였다. 지금은 무엇보다 일단 낮아진 체온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쓰러진 아이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렸다. 욕조에 물이 2/3가량 차오르자 긴토키는 수도꼭지를 다시 죄었다. 한 열셋쯤 되었을까. 카구라보다 조금 더 큰 키다. 긴토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꾸만 흘러내리는 소년의 몸을 고정시켰다. 쉽사리 오르지 않는 체온. 물론 금방 따뜻해지리라곤 생각도 안했다. 하지만 깨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꽤 오랫동안 저 빗속에서 있었으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이가 입고있던 겉옷이 방수가 되는 재질이었다. 긴토키는 따뜻한 물에 맞추어 따뜻해진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나이에 답지않게 근육이 잡혀있었다. 드문드문 상처와 흉터도 보였다. 피딱지가 앉아있는, 생긴지 얼마안된듯 어렴풋 칼로 인해 생긴 자상도 몇 되었다. 험한 녀석인가보군. 긴토키는 야트막하게 숨소리가 들리는 것 빼고는 여전히 미동도 없는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을 벗겨내며 생각했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바로 옷이었다. 경찰제복. 진선조. 그 칙칙한 검은 제복을 대체 왜 이 소년이 입고 있었을까. 그것도 치수조차 맞지 않는 옷을. 겉옷만 제복이었더라면 의심은 들지 않았을 터였다. 방수재질이니까. 정말 그랬다면 어떤 착한 인간이 이 아이를 위해 주었겠지 했을 터였지만, 옷차림 전체가 다 제복이었다. 진선조에 이렇게 나이가 적은 경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키타조차 그 안에서 막내취급을 받고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긴토키다. 대체 뭐하는 녀석이지. 긴토키는 시간이 지나 조금씩 따뜻해지는 소년의 검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따뜻한 물로 적셔내며 생각했다.


아직도 의식이 없는 소년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제 침상위로 눕힌 뒤에야 비로소 긴토키는 씻고 제 옷을 갈아입었다. 등에 사람을 업은 덕분에 약봉지를 품안에 우겨넣고 우산을 그대로 접어들어 뛰듯이 걸어왔던 긴토키는 한결 따뜻해진 몸으로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수건에 털어냈다. 그리고는 머리 맡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젠 거의 정상적인 체온으로 돌아와있다. 그렇게 비를 맞았는데도 감기기운 하나없이 멀쩡했다. 모르긴해도 튼튼한 놈이군. 긴토키는 한숨을 내쉬며 뒤로 주저앉았다. 도대체 뭐가 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긴토키는 누워있는 소년의 모습에서 일종의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본 적이 없는데 얼굴이 익숙했다. 그리고 그 흉터들. 아무리 봐도 싸우다 생긴 상처였다. 진검은 없었지만 분명 품안엔 검집도 있었다. 에도의 꼬맹이가 아무리 싸우고 자라봤자 폐도령이 내려진 지금 자상은 흔한 상처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어린 애들이 이정도 상처가 생길만큼 험한 곳도 거의 없었다. 차라리 가부키 쵸에서 주웠다면 납득할만 했지만 그가 쓰러져있던 곳은 평범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절대로 이런 상처들이 생길만한 곳은 아니다. 긴토키는 여전히 찌푸려져있는 소년의 미간을 꾹 눌렀다. 금새 풀어진 소년의 얼굴에 긴토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욕실 안에 있던 옷가지들을 챙겨 세탁실 바구니에 그것들을 넣었다. 그 순간 툭, 제 발치에 떨어진 것을 집어든 긴토키는 의아해하며 그것을 펼쳤다. 지갑. 그 안엔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土方 十四郎.

긴토키의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그럴 리가 없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 멀쩡한 사람이 어려질 수 있을 리가 없지.

긴토키는 젖은 담배곽을 쥐고 중얼거렸다. 제복 겉옷 안에 있던 담배였다. 긴토키는 몇시간째 이부자리에 누워있는 소년의 곁에 앉아 중얼거렸다. 카구라는 소파에서 자고있는지 조용했다. 집안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따금 밖에서 번쩍하는 번개가 내리칠 때면 방안도 잠시 환해졌다.

이제보니 그 사나운 눈매도 여전했다. 긴토키는 착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거짓말일거야. 꿈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 녀석이 그 자식일 리가 없잖아? 그렇지? 긴토키는 담배곽을 내려두고 여전히 잠들어 있는 이를 살폈다. 어딘가 크게 공격당한 것 같진 않았다. 숨소리도 고르게 울렸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엔 일거리가 가득 쌓여 있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급하게 빠져나간 이였다. 고작 이주일. 못 본 2주만에 제 연인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와있다. 그래, 꿈일거야. 꿈이겠지. 제기랄. 아무리 현 상황을 부정해봤자 꿈이 아니었다. 현실. 막막하고 무거운 두 글자에, 긴토키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 자식 대체 뭘 하고 다닌거야.

그는 멀쩡했다. 한가지만 빼면 멀쩡했다. 아니, 아니다. 그 한가지 때문에 이 녀석은 멀쩡하지 않았다. 말이 되냐고. 긴토키는 깨어나지 않는 이를 두고 그 옆에 다른 이부자리를 깔았다.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일단은 자기로 마음을 먹었다. 깨어나면 물어보자, 깨어나면.








“…….”

살랑거리는 무언가가 자꾸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머리카락을 따뜻하게 만지작거렸고, 익숙한 냄새가 났다. 긴토키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있는 쪽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한 그것이 이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입술로 향했을땐 긴토키는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열린 입술 안에 그것이 침입했다. 제 혀를 지긋이 누르다 손톱으로 긁고 빠져나간 손길에 긴토키는 눈을 번쩍 떴다. 눈 앞에 청회색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헉! 급히 뒤로 물러나 일어난 긴토키는 앉아있는 제 앞의 상대를 보며 숨을 들이켰다. 키스라도 하려던 모양인지 허리를 숙이고있던 이는 금새 허리를 세우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굴었다.

“너!”

“일어났냐.”

너무나도 태평한 대답에 긴토키는 순간 할말을 잃었다. 멍하게 앉아있는 긴토키의 머리가 급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애를 주워왔고, 눕혀두었고, 그리고…그리고……이런 미친. 긴토키의 얼굴이 생각의 순서대로 일그러졌다. 여전히 태평한 얼굴인 상대는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가는 긴토키를 보며 무심하게 입술을 혀로 쓸었다. 평소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놀릴 때 하는 모양새였다. 혹은, 긴토키를 덮칠 때.

“야 이 미친놈아!”

“일어나자마자 욕은.”

“너 그걸 말이라고 해? 대체 꼴이 그게 뭐야!”

긴토키는 답지않게 소리를 내질렀다. 상대 또한 답지않게 무심한 얼굴이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에 기가 질린 긴토키가 망연히 앉아있자 히지카타는 어깨를 으쓱하며 제 모습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어려진 체구. 키는 긴토키의 가슴팍까지 온다. 그럼에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 것이, 긴토키의 표정이 너무 압권이었다. 당황으로 일그러진 얼굴. 여유로움이 하나도 없는 긴토키의 얼굴에 히지카타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웃음이 나와? 웃음이 나와!!”

긴토키가 화를 냈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을 내지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긴토키가 벌떡 일어났다. 히지카타가 따라 일어나자 기다렸다는듯이 옆에 놓여져 있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당장 진선조에 전화해야한다. 결의에 가득찬 긴토키를 보며 히지카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내가 전화했어.”

“어이구, 그러셨어? 그럼 당장 둔영으로 돌아갈 것이지 왜 여기에 있어!”

“이 꼴로 어떻게 가.”

“그럼 어떻게 해! 가만히 있으면 네가 도로 커지냐? 뭐라도 해야할 것 아냐!”

“왜 그렇게 화를 내.”

“그럼 너같으면 웃겠냐? 이게 진짜, 뭐 이렇게 나긋나긋해? 너 히지카타 토시로 맞아? 너 히지카타 토시로 아니지? 그렇지?”

맞다고 했다간 입에 게거품이라도 물 기세였다. 히지카타가 말없이 어깨를 으쓱하자 긴토키는 허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떨구었다. 그리고 이내 끊어지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버린 긴토키는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앞에 히지카타도 주저앉았다.

“변명해봐.”

“밀수품. 불법으로 거래된 약물이야. 진선조에서 현장을 덮쳤고, 달아나는 천인을 잡다가 주사를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취총.”

“그래서 이렇게 되셨다?”

“그래서 이렇게 됐지.”

“너 지금 장난하니?”

“아니.”

아 정말, 말이나 못하면. 벽에 기대어 있던 긴토키는 무릎을 세우고 앉아 멍하게 히지카타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 떠오른 감정이라고는 빌어먹을 여유로움과 약간의 피로감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불안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당황과 짜증과 분노를 밀어낸 긴토키의 얼굴에도 이윽고 여유가 돌아왔다.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긴토키가 다시 말을 내뱉었다.

“다시 되돌릴 약은 있어?”

“물론.”

“그럼 다행….”

“지금은 없지만.”

나아지던 긴토키의 표정이 다시 삽시간에 희게 질렸다. 정말 멱살이라도 쥐어잡고 싶은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이 퍽 애처럽고 안쓰러웠다. 히지카타는 지금이야말로 침묵할 때라고 느꼈다. 멍하게 히지카타를 바라보는 긴토키의 얼굴에 망연자실함이 드러났다. 긴토키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술을 열었다.

“…너 왜 그렇게 평화로워?"

“별로 걱정 안하니까.”

“걱정이 안돼? 무슨 자신감으로?”

“그냥…알아서 생길테니까.”

“미친…놈아….”

긴토키가 또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나즈막히 내뱉었다. 눈썹 사이에 금을 내며 긴토키가 이마를 짚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손에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히지카타는 이내 조용히 말했다.

“배고파. 밥 해줘.”

“네가 애야? 네가 해먹….”

“나 지금은 애 맞는데.”

“…….”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표정으로 긴토키가 눈을 꾹 감았다. 참자, 참아. 저 녀석은 지금 나와 같은 성인이 아니야. 내 주먹 한방에 나가떨어질 거야. 끝없이 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긴토키가 일어섰다. 짜증스럽게 일어난 긴토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카구라는?”

“안경네 집으로 간다고 했다.”

“너 보고 뭐라고 안해?”

“네가 숨겨놨던 자식이라고 했더니 믿더군.”

“뭐라고?”

“농담이다. 마주친적 없어. 그냥 방문앞에서 외치고 가던데.”

요 녀석. 약 먹었다고 바로 쌩쌩해졌나. 긴토키는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몇번 매만지곤 방문을 열어 부엌으로 향했다. 히지카타가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히지카타의 배고프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마요네즈가 없음에도 곧잘 밥을 먹어치웠다. 긴토키가 무표정하게 지켜보고있자 이내 히지카타는 다 먹은 그릇을 제 앞에서 옆으로 치워두곤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올려 깍지를 끼었다. 긴토키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할말이 있는 표정을 바라보며 긴토키가 말해보라는듯 눈빛으로 채근했다.

“담배피고 싶다.”

“아서라, 아서. 커지고 난 뒤에 펴.”

“불편하군.”

“당연하지.”

“앉은 상태에서는 키스를 못하니까.”

덤덤히 내뱉는 히지카타의 말을 듣고 입만 벙긋거리던 긴토키의 얼굴이 금방 달아올랐다. 속에서 일어나는 혼돈이 빤히 보였다. 히지카타는 웃고싶었으나, 참았다. 지금 웃었다간 애인이고 뭐고, 작살난다.

“…너 진짜 어려지기만 한 거 맞아?”

사실 그거 말고도 머리가 어떻게 된거지? 진짜 이상해. 긴토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혼잣말이 울렸다. 히지카타는 그의 중얼거림에도 별말없이 앉아있었다. 어려져도 똑같은 그 눈매는 거짓이 없었다. 이따금 식사 후에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길은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본인이 말하는 것은 처음 듣는 긴토키였다. 어려지면 솔직해지나봐. 그렇게 생각하던 긴토키는 다시 파드득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솔직해진게 아니라 그냥 그 약이 이상한 걸거야. 긴토키는 이제 어지러울 지경인 머리를 짚었다.

“이렇게 말하면 키스해주는줄 알았는데.”

“…절대 안해줄거니까 그렇게 알아. 다시 돌아올때까지 키스는 금지야.”

“왜?”

긴토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히지카타가 곧바로 말했다. 미세하게 짜증도 함께 엿보였다. 흥, 벌이다. 얄밉게 톡 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대답이 없는 시간이 지날 수록 히지카타의 얼굴은 사나워졌다. 짜증이 난 어린 얼굴에 긴토키는 왠지 웃음이 났다. 한번 해줄까?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동요를 다시금 치솟는 분노로 잠재운 뒤 긴토키는 덤덤하게 답했다.

“나쁜 짓 하는거 같아서 싫어.”

“왜?”

“그야 네가…애니까.”

히지카타의 얼굴에 드디어 완전한 짜증이 배어났다. 긴토키는 팔짱을 낀채 등받이에 바싹 당겨 앉았다. 흥. 그 기세가 단호하게 콧웃음을 쳤다. 히지카타는 절대 허락해줄 기색이 없는 긴토키의 얼굴을 보곤 나즈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순순히 그릇을 들고 일어나 저를 지나쳐가는 옆모습을 보며 긴토키는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그러다 문득 물소리가 없다는 생각에 뒤편으로 고개를 돌린 긴토키는 돌리자마자 제 얼굴을 꽉 붙잡는 손에 깜짝 놀랐다. 마주친 눈이 웃었다.

“히지….”

안타깝게도 외치려던 말은 제 입술을 야금야금 먹어가는 입술에 막혀 나오지 않았다. 어른이어도, 애가 되어도 기술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평소와는 달리 담배맛이 나지않고, 방금 먹은 덮밥맛이 난다는 건 좀 특이했다. 눈을 감으며 키스에 열중하려던 생각이 단박에 판도를 바꾸었다. 이 자식 지금 열셋이라고! 긴토키는 괘씸함에 입술을 깨물어버렸다. 얼굴을 잡던 손이 금방 떨어져 나갔다.

“누가 마음대로 키스하래. 맞을래?”

“거 되게 치사하네.”

뭐? 치사? 얘가 진짜 미쳤나봐!
혼란스러움을 제어하지못한 긴토키가 얼빠진 얼굴로 저를 쳐다보자 그대로 씨익 웃은 히지카타가 다시 싱크대에 넣어둔 그릇을 씻기기 위해 돌아섰다. …얘가 진짜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긴토키는 금방 상념에서 벗어나 그 등을 바라보았다. 의심할 것 없이 자신의 연인인 이에게서, 평소와 같은 넓은 등이 아니라 아이의 좀 더 작은 등을 바라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긴토키가 멍하게 손을 뻗어 등에 손바닥을 대었다. 몸이 굳는 것이 손바닥 전체에 느껴졌다. 슬쩍 장난기가 돋은 긴토키는 피식 웃으며 검지손가락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바보.

두어번 써내려가던 글자가 바뀌었다.

히지카타 토시로.

그의 이름이 다시 서너번 등에 덧그려졌다.

좋아한다.

긴토키의 손가락이 이전과 달리 한 번만 글을 쓰고 마침표를 찍자 히지카타의 몸이 전보다 두어배로 뻣뻣해졌다. 솔직한 반응에 긴토키가 웃음소리를 흘리자 뻣뻣해졌던 몸만큼 뻣뻣해진 목을 가까스로 돌려 긴토키와 눈을 마주한 히지카타가 딱딱하게 말했다.

“나 섰다.”

긴토키의 얼굴이 대번에 희게 질렸다.









“변태냐고요. 어떻게 그것때문에 서냐고요. 어려서 참 좋다, 어?”

긴토키가 양 입꼬리를 쭈욱 내려물고 비아냥댔다. 히지카타는 미간을 찌푸린채 묵묵히 앉아있었다. 입술을 일자로 다문 것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듯 했다.






히지카타는 허옇게 핏기가 완전히 가신 긴토키의 손에 등을 떠밀려 혼자 욕실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며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히지카타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긴토키는 필사적으로 그 문앞을 막아섰다. 혼자 해결해! 문을 쾅쾅 두드려대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쿵! 긴토키가 살짝 문에서 떨어지려던 순간, 안에서 전력으로 문에 몸통박치기를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반동으로 약간 앞으로 떠밀렸던 긴토키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단단히 막아섰다. 역시 네가 금방 수그러들 리가 없지. 그 뒤에도 문을 부딪히는 소리가 쿵쿵 울려댔지만, 긴토키가 굳건하게 막아서 있었기에 더이상 떠밀리는 일은 없었다. 다만 긴토키가 문 부서진다며 짜증내는 소리만 웅웅 울렸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온몸을 박는 듯 하던 히지카타도 포기했는지 더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휘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긴토키는 그대로 문짝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고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녀석, 정력도 좋다. 그대로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있나? 긴토키가 멍한 얼굴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을 때, 안에서 작은 소리가 울렸다. 꽤 방음이 잘된 문이기에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운 긴토키는 안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집중했다.

“…긴토키.”

낮은 목소리가 명확히 긴토키의 이름을 불렀다. 관계했던 때처럼, 절정에 치달으면 항상 하는 버릇이었다. 긴토키. 허스키하게 목을 긁으며 내뱉는 그 말에 긴토키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파드득 어깨를 떨곤 눈을 꾹 감았다. 잠시후 물소리가 조그맣게 울렸다. 그제서야 긴토키는 멈추었던 숨을 토해냈다. 시원한 마루바닥위로 얹혀두었던 손을 말아 꾹 주먹을 쥔 채 긴토키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 씨. 나도 설뻔했다. 벌개진 얼굴을 애써 부채질하던 긴토키는 저 안쪽에서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 소리에 여유로운 표정을 가장하며 느긋하게 일어났다. 당연히, 나오면 놀릴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너 정말 안 돌아가봐도 되냐? 대원들이 걱정하는거 아니야? 아니, 그 전에, 너 없이도 돌아가긴 해?”

“…….”

긴토키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애써 부정하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차마 말로 나오질 않는 듯 했다. 이거 완전 얘 하나만 믿고 개판인가보군. 무심하게 히지카타의 반응을 보며 생각한 긴토키는 결심한듯 일어났다. 금방 날카로워진 눈이 긴토키를 뒤따랐다.

“어디가.”

“옷 입고 너 데려다주게.”

“난 안 가.”

“얘가 진짜! 빨리 가서 약이나 구해와! 평생 그러고 살래!”

“밖에 아직도 비 내려.”

“네가 언제부터 비 온다고 할 거 안할 거 가렸냐? 입 다물고 따라 나와라? 앙?”

“…안 가.”

긴토키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얘가 진짜 안하던 짓을 해. 몇 분 간 질리도록 눈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긴토키가 한숨을 내쉬며 백기를 들었다. 결국 다시 앉아있던 소파에 주저앉은 긴토키는 이내 길게 뻗어버렸다. 긴토키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앉아 저만 바라보고 있는 히지카타를 흘깃 보곤 천장을 올려보았다. 정해진 수순처럼 눈을 감자 조용한 빗소리만 들려왔다.
지긋지긋하게 내리네.
졸렸다. 애 같지도 않은 애한테 깨어나고부터 종일 시달려서 피로해졌다. 히지카타는 말이 없었고, 긴토키는 내려앉은 침묵과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둥둥 떠다니는 시선. 꿈 속의 자신은 어렸다. 선생님을 만나기도 더 전이었다. 어린 내가 어디선가 주워든 검을 가지고 시체더미속을 걸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의 시체를 밟고 밟았다. 작은 발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 큰 신발은 걸을 때마다 질질 끌렸다. 그렇게 정처없이 걷던 걸음이 우뚝 멈추어섰다. 주위는 빛이 하나도 없어 깜깜했다. 서있는 주변만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 순간이었다. 발 밑이 꺼졌다. 떨어지는 감각에, 몸의 중심부터 전신의 끝으로 기분 나쁜 소름이 퍼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끝없이 떨어지는 듯 했던 몸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잡혔다. 누군가가 안아주었다. 고개를 들었다. 어린 나를 안아든 이의 얼굴은 누군가 먹이라도 칠해놓은 양 검은 배경과 함께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익숙했다. 그 익숙한 이가 점점 작아졌다. 그럼에도 그 품은 여전했다. 확연히 키가 작아진 그의 얼굴이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저를 안아든 이는 웃고있다. 하얀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난 왜인지 공이 어려진게 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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