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5.
인간은 너무 약해.
부러진 발목이 묘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덜덜 떠는 그의 입술 사이로 이빨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평소와 같은 선한 웃음을 걸고있던 입꼬리가 만족감으로 비틀어져 올라갔다. 밝게 빛나는 파란색의 눈동자에는 광기가 스며들었다. 흰 머리카락을 적시며 툭툭 떨어지는 피와 이질적이게도 말라붙은 정액. 흰 유카타가 난잡하게 벌어져 나타난 몸에는 울긋불긋한 자국이 붉은 꽃처럼 피어있었다. 키득키득 웃는 낯짝을 올려보는 사내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했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관통당하고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려도 단 한 번조차 내비치지 않았던 공포가 성적인 고문으로 변질되자마자 그 얼굴에 나타났다. 벨트로 묶여진 두 손목이 셀 수 없는 마찰에 짓이겨져 피가 새어나왔다.
카... 카무이.
부르고 싶지 않은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떨렸다. 이름이 호명된 이는 옷자락 끝에 묻어있는 핏자국만 아니었더라면 여유롭게 산책을 나가도 될만큼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형은 강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봐.
또다시 눈웃음을 치는 그 얼굴은 음영이 져있어 감정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얌전히 다리 벌려줘요. 조이는 건 웬만한 여자들보다 나은걸?
6.
양이지사로 온다는 말은 바라지 않네.
나즈막히 중얼거리는 말에 새하얀 은발이 흔들거렸다. 달빛이 쏟아지는 아래 서있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굳건한 것 같아서, 카츠라는 웃었다.
정인이 되어줘.
흐드러지는 웃음이 그 하얀 얼굴에도 피어났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어떠한 대답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는 그저 등을 보이며 다시 걸음을 딛는다. 카츠라는 고개를 숙였다.
너는 또 다시 잃어버린 시간 속에 갇힌다.
7.
곱슬거리는 머리에 자석처럼 매달린 가발이 꽤나 잘 어울렸다. 습관처럼 검자루를 쓸며 칸막이가 설치된 접대용 의자에 앉아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긴 유카타 사이로 힐끔 힐끔 드러나는 다리가 묘하게 색정적이었다.
오, 소이치로군? 성인도 아닌데 이런데 와도 돼?
됩니다. 경찰이니까.
잘났다며 습관마냥 눈웃음을 치고 가는 뒷태에 아래사정이 급해졌다. 저 눈웃음. 그가 이 곳에 와서 여장을 할 때에만 나타나는 미소였다. 저번에도, 그 이전에도, 이 곳에 왔었지만 마주쳤으면서도 그는 늘 같은 질문을 되물었다.
이런 데서 그딴 눈웃음 치지 말라고요.
눈썹을 찌푸리며 앞에 놓인 술잔을 한 모금 마신 오키타는 앞에서는 자존심이 상해 내뱉지 못할 말을 다시 입안으로 삼켰다.
어린 연인의 사정은 조금도 봐주지 않는 그를 이미 통감한지 오래였기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