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른 조각글

긴른 조각글 3

Azyz 2016. 8. 13. 15:57








4. TS





너 자꾸 이럴래?
내가 뭘.

앞머리를 짜증스럽게 쓸어올린 이의 번듯한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온통 검은색인 방안에서 이질적이게 하얀색인 이는 번뇌하는 상대방의 기분을 모른척 침대에 쭉 뻗어있었다.

오키타가 열쇠 줬지.
왜? 내가 내 여자 방에서 자는게 뭐 어때서.
나 생리 중이라고.

신경질이 나는듯 미간을 구기면서도 결국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하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히죽히죽 웃는 긴코의 배를 툭 쳤다.

와, 귀신 부장님도 그런거 해?
재밌냐? 응? 재밌어?
걱정 마. 나도 생리 중이야.

금방 이불을 덮으며 생긋 웃는 긴코를 보곤 토시코는 뻐근한 뒷목을 주물렀다. 일이 하도 쌓여있어 며칠 내리 밤을 새웠던지라 제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 빨리 약이나 먹고 잠드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방까지 왔더니 제 연인이 이미 좁은 싱글 침대에 드러누워 뉴스를 보고있었다. 열쇠가 하나 빈다 했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 일도 없는 비번인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제 사무실에 온 건지 의아하게 만들었던 오키타가 일에 빠져있는 틈에 슬쩍해 그녀에게 준 모양이었다. 정말 할복이라도 시킬까보다. 도S답게 입꼬리를 말아 웃는 낯짝의 그녀를 슬쩍 떠올린 토시코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긴코가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너랑 어떻게 해보려고 온거 아니야. 카구라가 내쫓았단 말이야. 나 갈 곳이 없는 걸 어떡해.
또 미역줄기라도 빼앗아 먹었나보지.
다시마 초절임은 그냥 배고파서 먹은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왜 여기에 있냐고.
그럼 내가 어딜가? 우리 예쁜 서방님의 편한 침대 놔두고.

눈을 반달처럼 휘며 웃는 그녀를 보는 토시코의 얼굴이 이내 풀어졌다. 더 좋아하면 지는거라지. 결국 토시코는 그녀의 가슴에 머리를 올리며 어정쩡하게 엎어졌다. 땋아내리지 않은 긴 머리카락이 덜 마른 채 검은 유카타를 입은 등판 위로 흐드러졌다. 더 커졌냐? 아무렇지 않은 투로 얼굴을 부비는 토시코의 행동에 긴코가 꺄르르 웃는 소리를 냈다. 누가 자꾸 만져줘서 말이야. 희고 가는 손가락이 검은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었다. 잠을 자지못하고 지새웠던 지난 며칠 밤의 행각에 대한 짜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손에는 검을 쥐었던 굳은 살이 박혀있고, 경찰이란 명목으로 검을 차고 있는 제 손에도 굳은 살이 박혀있다. 죽을 때까지도 이 굳은 살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토시코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긴코가 웃었다. 많이 힘들어? 유일한 장점인 예쁜 얼굴이 다 망가져서 어떡해? 들으란 듯이 농을 거는 긴코의 말에 토시코는 대꾸할 기력조차 없었다. 허리에 말린 천이 가슴까지 죄는 기분이었다. 긴코는 아무 말이 없는 토시코를 내려보며 내색없이 그녀의 다부진 어깨를 쥐었다. 팔자에도 없을 서류작업에 진이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검밖에 없고, 더 나아가면 정의뿐이겠지.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인 터라, 긴코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늘 내 곁에 남아. 지금처럼 내가 없어도 이 곳에 있어.

본심이 드러난 채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아이의 어리광같은 말에 긴코가 웃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나이는 저와 엇비슷하면서 어쩌면 이리도 가릴 것 없이 솔직한지. 말랐지만 다부진 몸체가 저를 옭아매었다. 카구라에게 쫓겨났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침 일찍 찾아온 소코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곤도상이 시켰다며 애인 좀 봐주라는 콜에 읽던 점프책을 접어두고 기꺼이 그녀의 방에서 하루종일 뒹굴거렸던 긴코였다.

그러니까 딸기우유 좀 사두라고.

토시코는 피식 웃었다.